내 눈물로 하느님께 호소합니다
오늘 텔레비전에서 ‘바다 건너 사랑’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습니다. 화면 속에는 나이지리아의 가난한 마을에서 살아가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비쳤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가난한 나라의 한 장면이겠거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한 장면 한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제 마음은 점점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가난과 굶주림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삶의 무게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화면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차마 그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따뜻한 방에서 밥을 먹고 하루의 일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동안, 지구 반대편에서는 오늘 먹을 한 끼의 밥조차 없어 어린아이들이 굶주림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특히 제 가슴을 찢어놓은 것은 열 살 된 한 사내아이의 이야기였습니다. 반군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가족과 함께 다른 마을로 떠나 살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열 살인 아이가 어린 두 동생을 돌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른도 견디기 힘든 삶을 열 살 어린이가 짊어지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된 집도 없었습니다. 나무 몇 개를 세워놓고 거적이나 천, 비닐 같은 것으로 햇볕을 가린 곳이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 집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비를 피하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밤이 되면 어둠과 추위도 고스란히 견뎌야 했을 것입니다. 하루 이틀 밥을 굶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밥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기 어려울 만큼 굶주림이 일상이 되어버린 아이들이었습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가만히 물었습니다. ‘이 아이들을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아이들이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열 살이라는 이유로 부모를 잃고 동생들을 책임져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쟁도, 반군도, 가난도, 굶주림도 이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어른들이 만든 세상의 고통을 왜 어린아이들이 대신 짊어져야 합니까. 열 살 아이에게는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뛰어놀 권리가 있습니다. 엄마에게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빠의 품에 안겨 잠들 권리가 있습니다. 배고프면 밥을 달라고 말하고, 아프면 엄마에게 기대어 울 수 있는 것이 어린아이의 삶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에게는 그런 평범한 행복조차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 열 살 아이가 채소밭에 일을 하러 갔습니다. 어린 몸으로 밭에 들어가 풀을 뽑았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실수로 채소를 상하게 했다는 이유로 일당조차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는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열 살 아이가 일을 찾아 밭으로 갔을까요. 얼마나 동생들이 걱정되었으면 작은 손으로 흙을 만지며 하루 품삯을 벌려고 했을까요. 그런데 그 작은 실수 하나 때문에 품삯마저 받지 못했습니다. 어른에게는 사소한 하루였을지 모르지만, 그 아이에게는 동생들의 한 끼 밥이 걸린 절박한 하루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방송에서 한국에서 찾아간 배우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무엇이 가장 그리웠느냐’고 말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서 팝콘을 사 먹었던 기억을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아팠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그리운 것은 값비싼 장난감도 아니었고 좋은 집도 아니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서 함께 먹었던 팝콘 한 봉지였습니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아주 작은 행복 하나가 열 살 아이의 가슴속에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아이가 그리워하는 것은 엄마의 목소리였고, 엄마의 손길이었고, 엄마와 함께 먹었던 작은 팝콘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찾아간 배우가 아이들에게 팝콘을 사주었습니다. 세 아이는 오랜 굶주림을 잊은 듯 정신없이 팝콘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열 살 아이는 팝콘을 손에 쥔 채 선뜻 먹지 못하고 만지작거리고 있었습니다. 배우가 이상하게 생각하여 ‘너는 왜 먹지 않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아이가 한 말이 제 가슴을 산산이 무너뜨렸습니다. 자신도 먹고 싶지만 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먹이기 위해 먹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더 이상 화면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속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열 살짜리 아이가 배고픔을 참고 동생에게 팝콘을 양보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요.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요. 목구멍으로 넘어오는 침을 삼키면서도 어린 동생들을 먼저 생각했을 그 아이를 생각하니 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천사’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어느 천사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부모를 모두 잃고 자신의 배도 채우지 못하면서 어린 동생을 먼저 생각하는 아이. 자신도 열 살밖에 되지 않았으면서 동생들에게는 부모와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아이. 그 작은 손에 팝콘을 쥐고도 자신보다 동생을 먼저 생각하던 아이를 바라보며 저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물었습니다. ‘하느님, 정말 계십니까? 계신다면 저 어린 천사를 보고 계십니까? 저 아이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얼마나 엄마가 보고 싶은지, 얼마나 따뜻한 집에서 잠들고 싶은지 알고 계십니까?’
하느님, 저는 오늘 제 눈물로 호소합니다. 왜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의 전쟁 때문에 부모를 잃어야 합니까. 왜 어떤 아이들은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어떤 아이들은 하루 한 끼조차 먹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합니까. 왜 어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책을 읽으며 꿈을 꾸는데, 어떤 아이들은 동생을 먹이기 위해 어린 몸을 이끌고 밭으로 일을 나가야 합니까. 하느님께서 모든 아이를 사랑하신다면, 저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허락해 주십시오. 굶주림이 아닌 따뜻한 밥을 주시고, 비닐과 거적이 아닌 안전한 집을 주시고, 노동이 아닌 학교를 주시고, 눈물이 아닌 웃음을 주십시오.
하느님, 부디 이 세상의 어른들에게도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주소서.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손에서 무기를 내려놓게 하시고, 가난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게 하시며, 어린아이의 눈물을 자신의 눈물처럼 느끼게 하소서. 이 세상 어디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삶이 결정되지 않게 하소서. 피부색도, 나라의 경계도, 부모의 재산도 어린이의 행복을 가르는 벽이 되지 않게 하소서. 모든 어린이가 똑같이 사랑받고, 똑같이 배울 수 있고, 똑같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소서.
그리고 하느님, 오늘 제가 흘린 이 눈물을 기억해 주십시오. 이름도 모르고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그 열 살 아이를 위해 흘린 눈물입니다. 팝콘을 손에 들고도 동생을 먼저 생각했던 작은 천사를 위해 흘린 눈물입니다. 그 아이가 언젠가 배고픔을 잊고 마음껏 밥을 먹으며 웃게 해주십시오. 동생들과 함께 학교에 가게 해주시고, 책가방을 메고 맑은 목소리로 책을 읽게 해주십시오.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놀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어린이의 웃음을 되찾게 해주십시오.
하느님, 이제는 제발 아이들의 눈물을 멈추게 해주십시오. 어느 나라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든 모든 어린이가 아침이면 따뜻한 밥을 먹고, 깨끗한 물을 마시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저녁이면 부모의 품에서 편안히 잠들게 해주십시오. 오늘 제가 본 그 열 살 아이의 작은 손에서 팝콘을 빼앗아 간 것은 가난이었지만, 그 아이가 동생에게 내어준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랑이었습니다. 하느님, 그 사랑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그 작은 천사의 마음을 부디 따뜻하게 안아주십시오.
그리고 제가 오늘 흘린 눈물이 하늘에 닿아, 굶주리는 모든 어린이에게 희망이 되고, 전쟁으로 고통받는 모든 아이들에게 평화가 되게 하소서. 언젠가는 지구 어느 곳에서도 어린이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학교에서 맑게 책 읽는 소리와 함박웃음이 울려 퍼지게 하소서. 하느님,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눈물로 호소하는 것뿐이지만, 오늘만큼은 그 눈물이 멈추지 않게 하소서. 그 눈물 하나하나를 모아 세상의 모든 어린이에게 보내는 사랑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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