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오늘은 스물네 절기 가운데 동짓날이다. 해가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긴 날이다. 그러나 옛사람들은 이 날을 단순한 어둠의 끝으로 보지 않았다. 음이 극에 달하면 다시 양이 싹튼다는 일양시생(一陽始生)의 날, 다시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작은 새해로 여겼다.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여겼던 지혜는, 동지를 특별한 절기로 만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몸을 씻고 옥천사로 향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이 겹쳐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자기 인생의 관문 앞에 서게 된다. 보이지 않는 문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음은 무거워진다. 나는 부처님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합장했다. 지금의 이 답답한 흐름이 멈추지 않고, 조금이라도 열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순간 앞에서는, 마음을 가다듬는 일이 먼저다. 그 시간은 수심정기(修心正氣), 마음을 닦고 기운을 바로 세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법당 안에는 많은 할머니들이 입추의여지(立錐之地) 없이 앉아 계셨다. 작은 공간에 사람들의 기도가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오래 머물지 않고 조용히 인사를 드린 뒤 산신당으로 향했다. 산신당 앞에 서면 말수가 자연스레 줄어든다. 산과 바람, 나무와 흙 앞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진다. 인간은 자연을 거스를 수 없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이치일 것이다.
기도를 마친 뒤 절에서 아침 공양을 받았다. 동짓날이라 동지죽이 나왔다. 붉은 팥이 듬뿍 들어간 따뜻한 죽 한 그릇이 속을 편안하게 데워 주었다. 동짓날 팥죽을 먹는 풍습은 예부터 이어져 온 민속행사다. 팥의 붉은 기운이 잡귀를 막아주고 액운을 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집안 곳곳에 팥죽을 놓고, 문설주에 바르기도 했다. 미신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가족을 지키고자 했던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다. 민속은 언제나 삶의 자리에서 태어났고, 그래서 따뜻하다.
동지는 작은 설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날을 기준으로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고 여겼다. 해는 가장 짧지만, 희망은 가장 길어지는 날이다. 긴 밤을 지나야 새벽이 온다는 사실을, 동지는 말없이 알려 준다. 그래서 이 절기에는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 괴로움이 다하면 반드시 달콤함이 온다는 믿음은, 겨울을 견디는 힘이 된다.
요즘 나의 마음도 그러하다. 답답하고 불안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오늘의 동짓날은 조용히 말해 준다. 지금은 밤의 끝자락일 뿐이라고.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길이 막힌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인생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했던가. 지금의 어려움이 내일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절에서 내려오는 길에 산등성이 위로 겨울 햇살이 천천히 번지고 있었다. 어제보다 해가 길어졌다는 사실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으로는 분명히 느껴졌다. 오늘의 동짓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특별한 사건은 없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부처님 앞에서, 산신당에서, 그리고 동지죽 한 그릇 앞에서 나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갔다.
동지는 지나가는 절기가 아니다. 다시 시작하라는 자연의 조용한 권유다. 오늘 내가 보낸 이 하루가 훗날 돌아보면 또 하나의 관문이었음을, 그리고 그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았음을 기억하게 되기를 바란다. 긴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워진다. 이것이 내가 오늘, 동짓날에 배운 삶의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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