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을 찾아가며 느낀 마음
경로당을 찾아가며 느낀 마음
연말을 맞아 여러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는 비슷했지만, 어른들 얼굴에 담긴 표정은 서로 달랐다. 밝게 맞아주는 분들도 있었고,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시는 분들도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오랜 기다림을 품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르신들은 경로당을 관리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방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설을 점검해 줄 사람도 없고, 고장 난 곳을 살펴주는 눈도 없다고 말했다. 어떤 경로당에서는 전기장판이 고장 나 겨울을 걱정하고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수도꼭지가 새어 화장실을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텔레비전마저 고장 나 하루의 무료함을 화투로 달래는 경로당도 있었다. 작은 고장들이지만, 이 작은 것들이 어르신들의 하루를 얼마나 크게 흔드는지 현장에서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식사 문제도 빼놓을 수 없었다. 식사를 지어주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특히 남자 경로당은 큰 불편을 겪고 있었다. 30여만 원 남짓한 지원금으로는 하루하루를 운영하기 벅차다고 말하는 회장님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무겁게 한 것은, 여러 번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답이 없다는 점이었다. 알리미에게 말해도 감감무소식이고, 어디에 말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현실이었다.
그래서인지 어르신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구지회장이든, 으뜸효정책과든, 청장이든 누군가는 직접 경로당을 한 번만이라도 찾아와 보아야 한다고. 방문을 하면 알 수 있다고. 말로만 듣는 민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들리는 숨소리와 오래된 전기장판의 냄새와 고장 난 수도에서 새는 물소리 안에 진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이는 어른들의 바람이자, 오랫동안 쌓인 기대였다.
으뜸효정책이라는 이름은 효를 으뜸의 바탕, 본으로 한다고 했다. 효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저 찾아가 눈을 마주하고 안부를 묻는 일이다. 어르신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른을 찾아가는 것이 무슨 실례가 되겠느냐고. 오히려 고맙고 칭찬받을 일이라고. 이런 말씀을 들으며 나는 마음 한쪽이 뜨끔했다. 효가 정책으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러 경로당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말씀이 귓가에 남아 있다. 바라는 것이 크지도 않았다. 한 번만 와달라. 고장 난 곳을 한 번만 봐달라. 이 작은 바람조차 쉽게 닿지 않는 세상에서 어르신들은 오늘도 같은 자리에 앉아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이 글을 남구지회에 조심스럽게 올린다. 따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탁하기 위해서이다. 경로당은 어르신들의 하루가 머무는 곳이고, 마음이 쉬어가는 작은 집이다. 그 문을 한 번만 열어 본다면, 어르신들의 표정에 담긴 온기와 기다림을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더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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