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를 달구는 캐롤 송, 예수탄생
추위를 달구는 캐롤 송, 예수탄생
오늘은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예수가 태어난 날이다. 달력 위의 하루이지만, 이 날은 해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래된 질문을 다시 불러온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있는가, 그리고 이 세상은 정말로 모두가 함께 숨 쉬기 좋은 곳인가 하는 물음이다.
아침부터 시내 곳곳에서는 매우 춥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매서운 바람이 골목을 휘돌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진다. 그러나 그 차가운 공기 사이로 캐럴 송이 조심스레 퍼져 나온다. 상점 앞 작은 스피커에서, 교회 앞마당에서, 때로는 차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겨울 12월의 공기를 조금씩 데운다. 음표 하나하나가 손난로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덥히는 순간이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화려하지 않다. 다락방도, 따뜻한 방도 아닌 마구간에서 시작된 생명. 그 이야기는 처음부터 낮은 곳을 향해 있다. 그래서일까, 오늘이라는 날은 유난히도 다락방에서, 지하방에서, 혹은 보이지 않는 삶의 그늘에서 떨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집은 있어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사람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넘길지 막막한 사람들 말이다.
캐럴이 울려 퍼질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이 노래가 단지 기쁨의 노래로 끝나지 않기를. 누군가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한 번쯤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노래이기를. 두꺼운 외투를 입은 우리가 보지 못한 얇은 삶의 결을 잠시라도 느끼게 해 주기를 말이다. 따뜻함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 알아차림에서 시작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수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결국은 사람이다. 더 많이 가지라는 말이 아니라, 서로를 이웃으로 부르라는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건네는 짧은 인사, 어려운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 자기 자리에서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책임감 역시 사랑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나는 오늘의 예수 탄생이 종교를 넘어, 세계 인류가 함께 홍익인간의 세상을 떠올리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로운 삶을 생각하는 하루. 누군가를 밀어내는 대신 끌어안고, 경쟁보다 연대를 선택하는 하루 말이다. 그렇게 한 사람의 따뜻한 숨결이 또 다른 사람에게 전해질 때, 겨울 공기는 비로소 진짜 온기를 얻게 된다.
이 밤, 캐럴이 잦아들고 다시 고요가 찾아오더라도 그 따뜻함이 오래 남기를 바란다. 오늘만큼은 다락방에서, 지하방에서, 마음의 그늘에서 떨고 있는 사람이 없기를. 예수의 탄생이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작은 불빛이 되어, 서로의 길을 비추어 주기를 조용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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