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그림자, 결핵을 넘어 삶으로
칼럼/수필2026. 3. 24. 08:33
결핵은 오랫동안 가난과 굶주림의 그림자처럼 사람들 곁을 맴돌았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몸이 약해지면 어느새 스며들듯 찾아오는 병, 그것이 결핵이었다. 따뜻한 밥 한 끼가 귀하던 시절, 사람들은 병이 아니라 삶 자체와 싸우고 있었다. 허기와 추위 속에서 몸은 점점 쇠약해졌고, 그 틈을 타 결핵은 조용히 자리 잡았다. 결핵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가난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얼굴이었다.
나는 어릴 적 어른들의 이야기를 통해 결핵을 들었다. 누군가는 기침을 오래 하다가 결국 자리에 눕게 되었고, 누군가는 가족을 위해 끝까지 일을 하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그 시절 결핵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치료도 어렵고 약도 부족했으며, 병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의 끝을 예감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핵을 병이라기보다 운명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결핵은 가난한 사람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병에 걸리면 일을 할 수 없고, 일을 하지 못하면 먹을 수 없었다. 먹지 못하면 다시 병이 깊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처럼 결핵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졌다. 한 사람의 병이 한 가정을 무너뜨리고, 그 가정의 무너짐은 또 다른 가난을 낳았다. 결핵은 그렇게 조용하지만 깊게 사회를 잠식해 갔다.
그러나 결핵은 인간의 의지 앞에서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먹을 것이 풍족해지고, 위생 환경이 개선되며, 의학이 발전하면서 결핵은 더 이상 절망만을 의미하지 않게 되었다. 약이 생기고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결핵을 이겨낸다는 것은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핵을 완전히 잊어서는 안 된다.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는 굶주림과 가난 속에서 결핵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밥과 안정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이 병을 통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결핵은 과거의 병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조건이 무너지면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경고이기도 하다.
결핵을 생각하면 결국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병은 몸에 생기지만, 그 뿌리는 삶 속에 있다. 서로를 돌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일수록 결핵은 설 자리를 잃는다. 한 사람의 건강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책임이기도 하다. 따뜻한 관심과 나눔이야말로 가장 강한 예방책이 된다.
결핵은 가난의 화신이었지만, 동시에 인간이 극복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긴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다. 이제는 병을 두려워하기보다, 병이 생기지 않는 삶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서로의 삶을 살피고, 누구도 굶주리지 않게 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결핵을 진정으로 이기는 길이다.
오늘도 우리는 밥을 먹고, 따뜻한 집에서 쉰다. 이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결핵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너희는 서로를 얼마나 돌보고 있는가.” 그 질문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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