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학(白鶴)의 언덕에서 띄우는 83세의 청춘 선언
칼럼/수필2026. 2. 28. 23:03
조선대학교의 교정은 마치 거대한 지혜의 숲과 같았습니다. 2026년 3월, 차가운 겨울바람 끝에 맺힌 매화 봉오리처럼, 저 역시 83세라는 세월의 무게를 이겨내고 '1학년 신입생'이라는 설레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았습니다.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 현장은 젊은 학우들의 생동감 넘치는 활기(活氣)로 가득 찼고, 그 속에서 저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묘한 전율(戰慄)을 느꼈습니다.
강단에 서신 교수님들의 근엄(嚴謹)하면서도 따뜻한 소개, 그리고 학생회 간부들의 패기 넘치는 인사를 들으며 비로소 제가 대학생이 되었음을 실감했습니다. 하지만 배부된 수업 일정표를 받아 들었을 때, 저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일정표에 적힌 '16시(오후 4시)'라는 숫자 때문이었습니다.
평소 오후 7시부터 강의가 시작된다고 알고 있었기에, 4시는 제가 현재 맡고 있는 일자리 업무 시간과 정면으로 상충(相衝)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러면 학교를 갈 수 없는데 어찌하나' 하는 걱정에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오직 시간만 보고 덜컥 겁부터 났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고 자세히 살피니, 그 수업은 다름 아닌 토요일 강의였습니다. 토요일은 일터가 쉬는 날이니 그야말로 안성맞춤(安性맞춤)이었습니다.
첫 수업 날, 저는 교수님과 학우들 앞에서 굳은 결심(決心)을 밝혔습니다. "나는 앞으로 4년 동안 단 한 번의 결석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약속이 아니라, 내 생의 마지막 열정을 학문에 쏟아붓겠다는 저 자신과의 엄숙한 맹세(盟誓)였습니다. 저의 다짐을 들은 교수님께서는 인자한 미소를 지으시며 "그 말씀이 가장 듣기 좋습니다"라고 화답해 주셨습니다. 덧붙여 대학은 단순히 지식만 습득하는 곳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失敗)를 거듭하며 자신을 단단하게 단련(鍛鍊)하는 과정이며, 그렇게 졸업한 이가 사회에 꼭 필요한 재목(材木)이 된다는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본관으로 향하는 높은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다리에 힘을 꽉 주고 당당하게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숨이 조금 차올라 잠시 멈춰 서서 사방을 둘러보니, 온통 배움의 전당(殿堂)들이 저를 감싸 안고 있었습니다. 교정에 뿌리를 내린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늠름한 자태가 꼭 제 나이와 비슷해 보여 동질감(同質感)이 느껴졌습니다. 마침 올해가 조선대학교 설립 80주년이라고 합니다. 제가 학교보다 조금 일찍 태어났지만, 이 학교가 당시 호남 지역 시민들의 눈물 어린 성금과 헌금(獻金)으로 세워진 민립 대학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역시 조선대학교는 우리 모두의 자부심이자 자랑스러운 학교였습니다.
언덕을 오르며 생각했습니다. '83세에 입학한 나는 실패한 사람일까, 아니면 성공한 사람일까?' 답은 명확했습니다. 이 나이에도 배움의 길에 뛰어들 수 있는 나는 여전히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참으로 '쓸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돌아봐도 참으로 대견하고 성공한 인생입니다.
80평생 살아오며 수많은 선택을 했지만, 이 힘겨운 대학 문을 두드린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확신합니다. 이제는 만학도(晩學徒)로서 꿈이 아닌 실제적인 미래를 창조(創造)하려 합니다. 저의 이 위대한 첫걸음을 꼭 지켜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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