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령사, 월산근린공원에 내린 노란 설레임

칼럼/수필|2026. 2. 25. 12:35

2026225, 겨울의 끝자락을 시샘하던 추위가 어느덧 꼬리를 감추고 화창한(和暢) 봄기운이 온 대지에 내려앉았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이곳 광주 남구의 월산근린공원에도 어김없이 봄의 전령사(傳令使)가 찾아왔습니다. 마을 활동가이자 시민기자로서 매일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오늘따라 공원의 공기는 유난히 달콤하고 부드럽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니 발걸음이 절로 멈춰섭니다. 매실나무에 꽃이 활짝 피어났기 때문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매화(梅花)라고 하면 붉은 홍매(紅梅)의 강렬함이나 눈부시게 하얀 백매(白梅)의 청초함을 떠올리곤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매실꽃은 조금 다른 빛깔을 품고 있습니다. 완연한 백색보다는 은은하게 배어 나오는 노란 빛, 마치 갓 깨어난 병아리의 솜털 같기도 하고 따스한 오후의 햇살을 머금은 듯한 그 오묘한 색감이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매화와 매실나무는 본래 하나이지만, 우리는 흔히 꽃을 감상할 때는 매화라 부르고 열매를 중시할 때는 매실나무라 부릅니다. 이들은 불요불굴(不撓不屈)의 의지로 차가운 겨울바람을 견뎌내고, 가장 먼저 봄소식을 전합니다. 다른 꽃들이 따뜻한 봄볕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을 때, 매화는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기개로 홀로 피어나 은은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특히 오늘 제가 마주한 노란빛이 감도는 매실꽃은 그 화려함보다 실질(實質)을 준비하는 겸손함이 느껴집니다. 화려한 붉은빛으로 눈길을 사로잡기보다는, 머지않아 맺힐 푸른 매실의 생명력을 미리 품고 있는 듯한 그 빛깔은 참으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미덕을 닮았습니다. 옛 선비들이 사군자(四君子) 중 으뜸으로 매화를 꼽으며 그 절개를 기렸던 이유도 아마 이런 강인함과 순수함 때문일 것입니다.

 

마을 활동가로서, 그리고 진다리방송의 대표로서 살아가는 저의 삶도 이 매실꽃과 닮아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마을 구석구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열매를 맺기 위해, 겨울 같은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뿌리 깊은 나무가 되고 싶습니다. 영화감독의 시선으로 바라본 매실나무의 가지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습니다. 거친 껍질을 뚫고 솟아오른 여린 꽃잎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매실꽃의 노란 빛깔을 가만히 응시하면, 지난 세월 전국을 누비며 나주 담배를 팔던 청년 시절의 열정이 떠오릅니다. 비록 그때의 고생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의 갈피에 접혀 있지만, 그 시절의 땀방울이 있었기에 지금의 평온한 봄날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며 시민기자로서 현장을 누비는 지금 이 순간도, 훗날 누군가에게는 따뜻한 봄꽃 같은 소식으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월산근린공원을 가득 채운 이 꽃향기는 단순한 향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긴 겨울을 이겨낸 생명의 함성(喊聲)이자, 다시 시작하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매실나무는 꽃이 지고 나면 비로소 우리 몸에 이로운 열매를 맺기 위해 다시금 긴 인고(忍苦)의 시간을 보낼 것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로 여름을 준비하는 저 나무처럼, 저 역시 이 찬란한 봄날의 기운을 담아 마을을 위한 새로운 기획을 구상해 봅니다.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기품'이라고 합니다. 오늘 월산근린공원에서 만난 노란 빛의 매실꽃은 저에게 겸손하면서도 당당한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화창한 날씨 속에 피어난 이 봄의 전령사를 보며, 저의 책을 헌사하고 싶은 소중한 인연인 재미나이 선생님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글을 쓰는 즐거움, 마을을 가꾸는 보람, 그리고 렌즈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지함. 이 모든 것이 오늘 피어난 매실꽃처럼 은은하고 깊이 있게 영글어가길 기도합니다. 봄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고, 우리의 마음속에도 노란 매실꽃 한 송이가 피어났습니다.

신준영: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활동가 영화감독 진다리방송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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