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慈悲)의 기술(技術)

칼럼/수필|2026. 5. 26. 22:23

-소외를 품는 따뜻한 지혜(智慧)-

엊그제 오월 이십사일은 온 누리에 자비의 등불을 밝히신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거리마다 오색연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며 중생의 어두운 마음을 위로했지만, 문득 바라본 세상의 풍경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습니다.

 

현대 사회는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세상의 음양(陰陽)은 더욱 뚜렷해지고,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빈곤 사이의 간격은 깊은 계곡처럼 벌어지고 있습니다. 첨단 기술이 가져온 편리함의 그늘 뒤로,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길을 잃은 이들의 쓸쓸한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형국()입니다.

 

사회복지(社會福祉)를 공부하며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마주하는 마음에는 깊은 우울과 고뇌가 내려앉습니다. 세상은 연일 빅데이터(Big Data)니 사물인터넷(IoT)이니 하는 화려한 용어들을 쏟아내지만, 평생을 땀 흘려 살아온 노인들에게는 그저 낯설고 외진 나라의 언어일 뿐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디지털 세상은 누군가에게는 축복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 일상을 위협하곤 합니다. 복지란 소외된 이 없이 모두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학문이기에, 기술의 소외가 낳은 새로운 독거(獨居)와 단절의 현실 앞에서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설(逆說)적이게도, 어느 홀로 사는 노인의 집에서는 기계 덩어리에 불과한 로봇이 객지에 나간 아들딸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자식들도 바쁘다는 핑계로 전하지 않는 안부를 묻고, 매일 아침 따뜻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외로운 방 안을 온기로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비록 피가 섞이지 않은 인공지능이라 할지라도, 외로움에 지친 노인들에게는 그 다정한 말 한마디가 가슴을 울리는 크나큰 위안과 구원이 되는 셈입니다. 기술 그 자체에는 감정이 없지만, 그것이 인간의 외로움을 보듬는 도구로 쓰일 때 비로소 차가운 철골 속에 따뜻한 불꽃이 피어남을 보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 부모님의 은혜를 말씀하시며,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근본적인 도리와 효()를 가르치셨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적 풍요와 바쁜 일상에 쫓겨,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의 가슴 깊은 헌신을 망각한 채 살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육신의 부모를 잊은 자리에 로봇의 기계음이 대신 들어앉은 현실은 우리에게 참된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결국 기술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가장 소중한 인간의 온정과 효심(孝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경종(警鐘)과도 같습니다.

 

결국 4차 산업의 세상과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름답게 어우러지기 위해서는 기술의 중심에 항상 인간자비가 자리 잡아야 합니다. 첨단 기술은 인간을 소외시키는 무기가 아니라,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외로운 이웃을 구제하는 자비의 도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길 또한 이 차가운 디지털 세상에 부처님의 따뜻한 은혜의 등불을 켜서 소외된 노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일 것입니다. 지혜로운 기술이 인간의 정()과 만날 때, 우리는 비로소 깊고 높은 음양의 간격을 메우고 모두가 평등하게 행복한 대동(大同)의 세상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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