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시간의 이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의 무게-
산등성이에 걸린 달빛이 창살을 타고 내려와 발치에 머무는 깊은 밤이면, 나는 비로소 홀로 마주 앉는다. 하루를 마감하며 침상(寢床)에 눕기 전, 혹은 이른 새벽 산의 정기(精氣)를 마시며 걷는 그 길 위에서 나는 습관(習慣)처럼 두 손을 모은다. 내 간절(懇切)한 기원(祈願)의 끝은 언제나 화려(華麗)한 성취(成就)가 아닌, 소박(素朴)하고도 준엄(嚴)한 한 문장으로 귀결(歸結)된다. "부디, 사람답게 살 기회를 허락해 주소서."
누군가는 물을지도 모른다. 이미 주어진 생(生)을 살아가면서 다시금 '사람답게 살 기회'를 구하는 것이 과욕(過欲)이 아니냐고. 하지만 나에게 건강(健康)이란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세상에 내어놓을 수 있는 마지막 소명(召命)을 완수하기 위한 최소한의 도구(道具)이자, 삶에 대한 예의(禮儀)다. 쇠약해진 육신(肉身)에 갇혀 마음의 빛을 잃지 않기를, 그리하여 아직 내게 남은 생의 에너지가 타인의 그늘을 보듬는 작은 온기(溫氣)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나의 유일한 집착(執着)이다.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나무를 본다. 모진 풍파(風波) 속에서도 뿌리를 깊게 내린 나무들이 끝내 잎을 틔우는 이유는 혼자 우뚝 서기 위함이 아님을 안다. 새들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지친 나그네에게 그늘을 드리우며,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 다른 생명을 키워내기 위함이다. 나의 건강(健康) 또한 그러하기를 소망(所望)한다. 내가 정성(精誠)껏 몸을 가꾸고 정신을 맑게 유지하려는 까닭은, 아직 내 안에 타오르는 열정(熱情)의 불씨가 사회라는 커다란 화로(火爐) 안에서 보람된 쓰임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람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히 숨을 쉬는 존립(存立)의 문제를 넘어, 자아(自我)를 실현하고 타인과 연대(連帶)하며 존재(存在)의 의미를 증명해내는 과정이다. 내가 꿈꾸는 사회 활동(活動)은 대단한 명예(名譽)나 부(富)를 쫓는 일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경험(經驗)의 조각들이 누군가에게는 길잡이가 되고, 나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보람의 현장(現場)에 서 있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이 기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과연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가'라는 자문(自問)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그러나 잠들기 전 고요 속에서 내면(內面)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면, 이 마음은 나만을 위한 욕심(欲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은 나를 세상에 보낸 거대한 섭리(攝理)에 대한 응답(應答)이며, 내게 생명을 부여한 존재에 대한 가장 정직(正直)한 감사(感謝)의 표현이다.
건강을 유지하려는 나의 분투(奮鬪)는 그래서 처절(悽絶)하고도 아름답다. 매일 아침 근육을 깨우고, 맑은 음식을 취하며, 부정(否定)의 기운을 씻어내는 행위는 곧 더 나은 인간이 되겠다는 성스러운 의식(儀式)과도 같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아직 내가 닿아야 할 손길이 세상 어딘가에 기다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산길을 걷게 하며, 어둠 속에서도 눈을 뜨게 한다.
오늘도 나는 산을 내려오며, 혹은 잠의 심연(深淵)으로 빠져들며 나지막이 읊조린다. "나의 건강함이 나의 자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타인을 향한 통로(通路)가 되게 하소서. 주어진 기회를 헛되이 쓰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사람 향기 나는 보람찬 활동 속에 머물게 하소서."
이 간절한 염원(念願)이 하늘에 닿아, 내 삶의 궤적(軌跡)이 누군가에게는 희망(希望)의 증거(證據)가 되기를. 소박하지만 단단한 이 마음이 결코 과한 욕심이 아니라, 생(生)을 향한 가장 지고(至高)한 사랑임을 나는 이제 안다. 보람된 일을 하며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이 뜨거운 갈망(渴望)이 있기에, 나의 오늘과 내일은 여전히 눈부신 기적(奇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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