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낮은 골목에 흐르는 삶의 궤적(軌跡):
담장 낮은 골목에 흐르는 삶의 궤적(軌跡):
-진다리에서 전하는 편지-
2026년 정초(正初), 차가운 겨울바람을 뚫고 백운2동과 1동, 그리고 주월동 주택단지의 좁은 골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진다리 프로덕션의 앵글 속에 담긴 그곳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허물어야 할 낡은 공간일지 모르나, 제 눈에는 수십 년의 세월이 층층이 쌓인 거대한 서사(敍事)의 현장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월산4동과 5동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합니다.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물결이 들이치기 전, 그곳에 숨 쉬는 마지막 온기(溫氣)를 기록하기 위해서입니다.
골목을 걷다 보면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주차를 막기 위해 놓인 낡은 타이어, 물을 채운 페트병, 그리고 주인을 알 수 없는 빛바랜 의자들입니다. 누군가는 이를 보고 이웃 간의 이기심(利己心)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이 좁은 통로에서 주차 문제로 고성이 오가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할 때면 마음이 착잡(錯雜)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것은 내 집 앞이라는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려는 서민들의 절박(切迫)한 몸부림이자, 자동차가 사람보다 많아진 시대가 낳은 모순(矛盾)이기도 합니다.
그 날 선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생명은 피어납니다. 대문 앞 한쪽 구석, 깨진 고무 대야나 스티로폼 박스에 흙을 채워 가꾼 화분들은 이 골목의 유일한 위안(慰安)입니다. 옥상으로 눈을 돌리면 그 정성은 더욱 지극(至極)해집니다. 한 뼘이라도 땅이 있으면 고추를 심고 가지를 올리는 어르신들의 손길에서, 우리는 흙을 만지며 살아온 농경의 본능(本能)과 생활비를 아껴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태주려는 자애(慈愛)를 읽어냅니다. 그 '한 뼘 농장'은 식탁 위의 반찬을 넘어, 삭막한 시멘트 숲에서 인간이 자연과 소통하는 마지막 통로(通路)였던 셈입니다.
이제 저는 이 골목에서 사람을 만나려 합니다. 마을 방송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익힌 노하우(Know-how)와 손에 익은 DJI 무선 마이크를 들고, 어르신들께 따뜻한 캔커피 하나를 건네며 말을 걸어보려 합니다. "어르신, 이 동네로 이사 오시던 날 기억나세요?"라는 가벼운 물음으로 시작될 그분들의 이야기는, 이 동네의 시원(始原)이자 우리가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구술사(口述史)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재개발되어 번듯한 아파트가 들어서면 주차 다툼도 사라지고 깨끗한 환경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공동체의 갈등이 사라진 자리에 더 무서운 고립(孤立)과 불통(不通)이 들어설까 봐 말입니다. 아파트의 육중한 현관문은 사생활을 보호해주지만, 동시에 옆집의 슬픔과 기쁨을 차단하는 장벽(障壁)이 됩니다. 골목에서 큰소리로 싸우던 이웃들은 최소한 서로의 존재를 의식(意識)하며 살았지만,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의 침묵은 타인을 유령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다리 프로덕션이 기록하는 이 풍경은 더욱 소중합니다. 담장이 낮아 옆집 밥 짓는 냄새가 공유되던 곳, 비록 주차 때문에 다툴지언정 길에서 마주치면 서로의 안부를 묻던 그 정서(情緖)를 영상이라는 그릇(容器)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습니다. 훗날 월산동이 거대한 아파트 단지로 변했을 때,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단순히 낡은 집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溫度)'였음을 이 기록들이 증명해줄 것입니다.
앞으로 이어질 월산 4, 5동의 촬영 여정은 단순히 재개발 지구를 기록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라져가는 공동체에 대한 경의(敬意)이자, 미래의 우리에게 보내는 간절한 메시지(Message)입니다. "불편해도 함께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는 그 따뜻한 기억을 담기 위해, 저는 오늘도 좁은 골목길로 카메라를 들고 나섭니다. 그곳에서 만날 어르신들의 주름진 미소와 대문 앞 초라한 화분들이, 내일의 우리에게 더 큰 울림(共鳴)으로 다가오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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