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의 객기와 대한의 굴욕
小寒의 客氣와 大寒의 屈辱
계절의 시계가 한 해의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지점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동장군(冬將軍)이 기세를 부리는 소한(小寒)이 찾아온다. 이름만 놓고 보자면 ‘작은 추위’라는 뜻의 소한이 ‘큰 추위’인 대한(大寒)보다 덜 추워야 마땅하거늘, 우리네 옛말에는 소한 집에 놀러 갔던 대한이 얼어 죽었다거나 소한 추위는 꾸어다 가도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위세가 당당하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절기상 소한 무렵이 일 년 중 가장 춥다. 이는 자연의 섭리가 단순히 이름의 크기에 얽매이지 않음을 보여주는 명실상부(名實相符)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어느 해인가, 소한의 매서운 칼바람을 피해 대한이 소한의 집을 찾아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소한은 제 형인 대한이 찾아오자 깍듯하게 대접하기는커녕, 내 구역에 감히 누굴 찾아오느냐며 서슬 퍼런 서리발로 대한을 문밖으로 내쫓았다고 한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추위에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친 대한은 결국 소한의 기세에 눌려 짐을 쌌다는 이야기다. 이 해학적인 설화 속에는 우리 조상들이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가졌던 여유와 고진감래(苦盡甘來)의 지혜가 담겨 있다.
내가 젊은 시절, 고향 어르신들을 위해 전국을 누비며 나주 담배를 팔던 그 시절의 겨울도 늘 소한의 추위와 함께였다. 터미널의 차가운 대리석 바닥 위로 스며들던 그 소한 추위는 말 그대로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으나, 고향 보광골에 세워질 마을 회관을 생각하면 가슴 속에서는 언제나 뜨거운 불꽃이 일었다. 손을 소맷자락에 넣고 웅크리고 계시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눈에 밟혀, 나는 소한의 칼바람조차 마이동풍(馬耳東風)으로 여기며 전국 방방곡곡(坊坊曲曲)을 누볐다.
소한은 단순히 춥기만 한 절기가 아니다. 농가에서는 소한부터 대한 사이의 혹한(酷寒)을 견디기 위해 땔감을 충분히 준비하고, 겨우내 먹을 양식을 갈무리하며 봄을 기다린다. 이는 겉으로는 차갑고 멈춘 듯 보이나 내면으로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시간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소한의 추위보다 더 매서운 겨울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한의 추위를 이겨낸 뒤에야 비로소 봄의 전령사인 입춘(立春)을 맞이할 수 있듯, 지금의 고난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글을 마치며 창밖을 내다본다. 소한의 집에서 쫓겨난 대한이 어디선가 훌쩍이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우리는 안다. 이 매서운 추위가 지나야만 땅속의 씨앗이 기지개를 켜고, 우리네 인생도 다시금 금상첨화(錦上添花)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소한의 매운맛을 본 자만이 봄의 단맛을 오롯이 즐길 자격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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