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헤아리는 일자리라는 질문
영하의 찬바람이 살을 에는 겨울 아침, 학교 앞 도로에 먼저 도착한 이는 늘 어르신들이었다. 두툼한 외투와 장갑으로도 막기 어려운 냉기 속에서 몸을 굽혀 쓰레기를 줍는 모습은, 노동 이전에 삶의 무게를 떠올리게 한다. 그 풍경 앞에 서면 자연스레 한 가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지금, 계절을 충분히 고려한 정책을 운용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남구는 어른들에게 효자라는 평가를 받는다. 효자 구청장이 으뜸효정책을 내세우며 어르신을 존중하는 행정을 강조해 왔다. 노인일자리 정책 역시 그 연장선 위에 있다. 경로효친(敬老孝親)의 가치를 제도 속에 담아내려는 노력은 분명 의미 있다. 다만 정책은 늘 현장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겨울의 혹한은 누구에게나 가혹하지만, 노년의 몸에는 더욱 그렇다. 영하의 기온과 강한 바람 속에서의 야외 활동은 ‘건강을 위한 활동’이라는 취지와 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제안이 조심스럽게 떠오른다. 노인일자리의 시작 시점을 음력 설 이후로 조정하는 방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음력 설을 지나고 나면, 입춘이 오고 계절은 빠르게 바뀐다. 며칠 사이 겨울의 강추위는 물러나고, 야외 활동이 한결 수월해진다.
만약 혹한기를 피하고 음력 설 이후부터 연말까지 일자리를 운영한다면, 약 10개월간의 안정적인 활동이 가능해진다. 이는 일자리를 줄이자는 제안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건강과 안전을 우선에 두자는 선택이다.본말전도(本末顚倒)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목적에 맞는 시기와 방식이 함께 고민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질문은 활동비에 관한 부분이다. 현재의 월 29만 원 수준의 활동비는 어르신들의 사회참여 의미를 담기에는 다소 아쉬운 금액이라는 의견도 있다. 혹한기를 제외하고 활동 기간을 조정하는 대신, 월 30만 원에서 40만 원 수준으로의 인상은 검토해 볼 수 없을까. 이는 단순한 보상이 아니라, 어르신 노동에 대한 사회의 태도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노고지극(勞苦至極: 몹시 수고하고 매우 고생한 세대)의 시간을 보내온 세대에게, 최소한의 존중을 수치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물론 어르신들께서는 집에 머무는 것보다 일자리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더 소중히 여기신다. 함께 웃고, 함께 하루를 보내는 그 시간 속에는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정이 있다. 그렇기에 이 정책은 중단의 문제가 아니라, 조정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어른을 공경한다는 것은 하게 하는 것보다 헤아리는 것에 가깝다. 날씨를 살피고, 계절을 따지고, 몸의 변화를 먼저 생각하는 행정이야말로 효의 실천일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모든 정책은 결국 사람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음력 설 이후에 시작하는 노인일자리, 그리고 조금 더 넉넉한 보상에 대한 질문은, 어른을 향한 예우를 한 단계 더 깊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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