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길 위에서 배우는 예우
영하의 찬바람이 살을 에는 아침, 주월중학교 앞 도로에 먼저 도착한 것은 출근 차량도, 학생들의 발걸음도 아니었다. 가장 연장자이신 한 어르신이 말없이 몸을 굽혀 도로변의 쓰레기를 줍고 계셨다. 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찬 기운은 한기(寒氣)를 넘어 고통에 가까웠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은 희미한 연기처럼 흩어졌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것이 과연 일자리인가, 아니면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책임의 전가인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다른 참여 어르신들은 양지 쪽에 모여 몸을 웅크린 채 서로의 손을 비비며 추위를 견디고 계셨다. 누군가는 “이럴 땐 집에 있는 게 낫지”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체념이 배어 있었다. 그 장면은 노인의 노동을 단순히 참여와 실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노인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위기 앞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경로효친(敬老孝親)이라는 말이 문서 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서광중학교 현장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출석 예정이던 어르신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미 모여 있던 일곱 분의 어르신이 찬바람 속에서 한참을 서 계셔야 했다.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시간을 견뎠고, 누군가는 말없이 목도리를 여몄다. 그 모습은 노고지극(勞苦至極)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오히려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물론 많은 어르신들께서는 집에 머무르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잠을 자는 것보다, 비록 춥더라도 일자리에 나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신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그 시간은 단순한 노동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이라는 말처럼, 함께 춥고 함께 웃으며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르신들께는 삶의 활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팀장으로서 현장을 바라보는 마음은 마냥 가볍지 않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오셨다 해도, 혹한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위험하다. 한순간의 방심이 한랭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현장을 관리하는 이들의 몫이 된다. ‘일자리에 나오게 하는 것’과 ‘안전하게 모시고 지키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른에 대한 예우는 말이 아니라 조건에서 드러난다. 날씨가 좋을 때의 배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영하의 혹한기에도 여전히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필귀정(事必歸正), 결국 모든 일은 바른 방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면, 어르신 일자리 역시 존중과 보호라는 원칙 위에서 재정비되어야 한다.
그날 현장에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어르신들은 약해서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존중받아야 할 존재이기에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영하의 길 위에서 몸을 굽혀 쓰레기를 줍던 그 한 분의 등 뒤에는, 한 사람의 노동을 넘어 한 세대의 인내와 책임이 서 있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등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그 수고에 예를 갖추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혹한기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우다.
'칼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세상은 아직, 고맙다 (0) | 2026.01.23 |
|---|---|
| 계절을 헤아리는 일자리라는 질문 (0) | 2026.01.22 |
| 소한의 객기와 대한의 굴욕 (1) | 2026.01.11 |
| 담장 낮은 골목에 흐르는 삶의 궤적(軌跡): (1) | 2026.01.08 |
| 주월주택단지 좁은 골목길, (0) | 2026.01.0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