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주택단지 좁은 골목길,

칼럼/수필|2026. 1. 8. 16:52

주월주택단지 골목 사진

-그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地層)을 인화(印畵)하다-

 

오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묵직한 잔상(殘像)이 맺힌다. 백운2동의 구불구불한 길을 지나 발길이 닿은 곳은 광주 남구의 주월주택단지. 누군가에게는 그저 낡은 집들이 모여 있는 평범한 동네겠지만, 렌즈를 통해 들여다본 그곳은 1965년의 태동(胎動)1990년대의 팽창(膨脹), 그리고 오늘날의 정체(停滯)가 공존하는 거대한 시간의 박물관이었다.

 

1965년경, 이곳은 이른바 '말집'이라 불리는 독특한 주거(住居) 형태로 시작되었다. 한 지붕 아래 두 가구가 나란히 몸을 맞대고 살아가도록 설계된 그 집들은, 전쟁의 상흔을 씻어내고 본격적인 도시화로 나아가던 시절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자 지혜로운 나눔의 산물이었을 것이다. 좁은 마당을 공유하며 이웃의 찌개 끓는 소리에 안부를 묻던 그 시절의 서정(抒情)이 아직도 담벼락 밑둥에 이끼처럼 끼어 있는 듯하다.

 

시간은 흘러 1990년대, 대한민국을 휩쓴 주택 붐은 이곳의 풍경을 다시 한번 바꾸어 놓았다. 단층 말집들이 헐린 자리에는 붉은 벽돌의 2층 양옥집들이 당당하게 들어섰다. 1층에는 부모님이, 2층에는 장성한 자녀 세대가 살거나 혹은 세를 놓아 생계를 꾸리던 그 시절, 주택은 가족의 안식처(安息處)이자 가장 확실한 자산(資産)이었다. 대문을 장식한 화려한 문양과 옥상에 놓인 장독대들은 당시 중산층으로 진입하고자 했던 서민들의 열망(熱望)을 상징하는 징표(徵標)와도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이 골목이 원형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광주의 아파트 경기 침체(沈滯) 덕분이다. 만약 자본의 논리가 이곳을 먼저 훑고 지나갔다면, 대형 건설사의 육중한 포클레인이 이 정겨운 골목들을 진즉에 평지로 만들고 그 위에 차가운 회색 콘크리트 숲을 세웠을 것이다. 자본이 비껴간 자리에 남겨진 이 골목들은, 그래서 더 애잔하고 귀하다. 이곳은 거대 자본이 놓쳐버린, 혹은 외면한 우리네 고향(故鄕)의 마지막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진다리프로덕션' 포토존에 이 사진들을 정성스럽게 갈무리해 넣었다. 이것은 단순한 이미지의 저장(貯藏)이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나의 예우(禮遇)이자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전언(傳言)이다. 훗날 이 골목이 개발의 물결에 휩쓸려 지도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날, 내가 남긴 이 사진들은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을 되찾아줄 매개체(媒介體)가 될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우리 도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숨 쉬어 왔는지를 증명하는 사료(史料)가 될 것이다.

 

골목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사람의 발길이 닿아야 비로소 길이 되고, 그 길 위에서 이야기가 꽃피기 때문이다. 주월동의 낡은 담벼락에 비친 오후의 햇살을 보며 생각한다. 언제고 그 누가 이 사진들을 꺼내 볼 때, 그가 보게 되는 것은 단순히 낡은 건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치열하고도 따뜻하게 삶을 일구었던 사람들의 체온(體溫)이기를.

 

역사의 변천(變遷) 속에 쓰러져가는 것들을 붙잡아두는 이 작업이, 훗날 우리 동네, 우리 고향의 소중한 정체성(正體性)을 증명하는 단단한 주춧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골목은 좁아도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기에, 나는 내일도 카메라를 메고 이름 없는 길 위로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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