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닌 이름으로 남는 졸업
졸업식 아침의 공기는 유난히 차분했다. 교문을 들어서며 누구도 크게 말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가슴속에는 지난 시간들이 조용히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은 단순히 학교를 떠나는 날이 아니라, 스스로를 다시 증명해 낸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의 역사로 남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늦깎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모였다. 산업현장과 생업의 자리를 떠나 다시 교실로 돌아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일요일마다 이어진 등굣길, 몸에 밴 피로와 싸우며 책장을 넘기던 시간, 이해되지 않는 문제 앞에서 포기 대신 질문을 택했던 순간들. 그것은 단순한 학습의 과정이 아니라 삶을 다시 세우는 고군분투의 시간들이었다.
그 길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걸었다는 사실은 더욱 특별하다. 제49회 학우들은 서로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았다. 앞서가는 이를 시기하지 않았고, 뒤처진 이를 외면하지 않았다. 학생회장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참여와 연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성과였고, 이는 방송통신고등학교가 가진 공동체 정신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였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일이 곧 나 자신의 성취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학교에서 배웠다.
배움은 교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현장에서,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배움이 무엇인지 몸으로 익혔다. 학행일치라는 말은 구호가 아니라 태도였고, 삶을 대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확장이다. 책을 덮는 순간이 아니라, 배움을 삶으로 옮기는 출발선이다.
이 학교의 교문을 드나들며 우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정신을 배웠다.
4·19 혁명의 정신,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태도다. 그것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일상에서 옳다고 믿는 것을 지켜내는 용기였다. 불합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작은 부정 앞에서도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삶의 자세였다. 이제 그 정신은 교실을 떠나 각자의 삶 속에서 더 단단하게 자라야 한다.
오늘 졸업하는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라는 이름으로만 남지 않는다. 이제는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부르고, 모교를 기억하며, 그 역사를 이어갈 책임을 함께 지게 된다. 동문회 활동은 친목의 자리가 아니라 약속의 자리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후배들에게 건네주고, 방송통신고등학교가 세대를 넘어 흐를 수 있도록 지켜내는 다짐이다.
졸업은 이별이 아니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조금 다른 자리에서 다시 살아가기 시작하는 일이다. 직장에서, 지역사회에서, 또 다른 배움의 길 위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이 학교를 증명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 “그때 우리가 참 잘 버텼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제49회 학우 여러분, 오늘 우리는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학교에서 배운 마음만은 평생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이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러나 오늘의 졸업이 개인의 성취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 이제 우리는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이 아니라, 학교의 시간을 이어갈 사람들로 서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고등학교는 단지 학력을 보완하는 기관이 아니었다. 삶의 중간에서 배움을 포기하지 않은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와 서로를 붙잡는 연대의 가치를 가르친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 학교의 역사는 교실의 숫자로만 기록될 수 없고, 졸업생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서 이어져야 한다.
이에 우리는 오늘, 졸업과 동시에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동문회는 추억을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 모교를 지켜내고 후배들의 길을 밝히는 공동의 책임이다. 우리가 겪었던 어려움과 시행착오가 다음 세대에게는 디딤돌이 되도록 하는 일, 그것이 먼저 걸어간 이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동문회는 형식보다 정신을 먼저 세울 것이다.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는 정의의 정신을 학교의 역사 속에, 지역사회 속에 살아 숨 쉬게 할 것이다.
배움과 삶이 분리되지 않았던 학행일치의 가치를 졸업 이후에도 실천으로 증명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고, 모교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방송통신고등학교의 역사는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영상강처럼 다음 세대로 흘러갈 것이다. 그 흐름이 멈추지 않도록 지켜내는 것이 오늘 졸업하는 우리의 또 다른 졸업 과제다. 오늘 우리는 학교를 떠나지만,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시작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되, 같은 뿌리를 기억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이 다짐이 이어질 때, 방송통신고등학교는 천년만년 살아 있는 학교로 남을 것이다.
'칼럼 >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명 한 줄에 담긴 공공의 무게 (1) | 2026.01.31 |
|---|---|
| 조선대 등록금 0원, (0) | 2026.01.30 |
| 세상은 아직, 고맙다 (0) | 2026.01.23 |
| 계절을 헤아리는 일자리라는 질문 (0) | 2026.01.22 |
| 영하의 길 위에서 배우는 예우 (0) | 2026.01.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