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5일, 역사의 숨결을 따라 걷는 마을 활동가의 기록

칼럼/수필|2026. 3. 6. 21:52

꽃샘추위가 시샘하듯 옷깃을 파고드는 3월의 초입입니다. 어제는 3월 5일, 달력의 숫자 하나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류와 우리 민족이 걸어온 파란만장(波瀾萬丈)한 영욕(榮辱)의 세월이 고스란히 박제(剝製)되어 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 활동가이자 시민기자로서, 저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이 날이 품은 역사적 무게를 되새기며 펜을 들었습니다.

먼저 고개를 돌려 세계사를 바라봅니다. 1953년 3월 5일, 철의 장막 뒤에서 세계를 호령하던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사망했습니다. 한 인물의 죽음은 냉전(冷戰)의 기류를 바꾸어 놓았고, 인류사에 거대한 변곡점(變曲點)을 마련했습니다. 권력의 무상(無常)함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입니다. 또한 1946년 같은 날, 윈스턴 처칠은 미국 미주리주에서 그 유명한 '철의 장막' 연설을 통해 냉전의 시작을 공식화했습니다. 평화를 갈구하던 인류에게 또 다른 갈등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린 서막(序幕)이었지요.

 

우리나라의 역사 속 3월 5일은 더욱 각별(恪別)합니다. 1920년 3월 5일, 민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했던 조선일보가 창간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라는 암흑 같은 시절, 우리 글과 우리말을 지키며 민족의 울분을 토해내던 언론의 탄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시민기자로 활동하는 저에게 언론의 사명(使命)이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자문(自問)하게 만드는 지점입니다. 진실을 기록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 그것이 오늘날 진다리방송 대표로서 제가 짊어져야 할 책무(責務)임을 깨닫습니다.

 

마을 활동가로서 지역 사회를 누비다 보면, 역사는 결코 먼 곳에 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1960년 3월 5일, 대구에서는 이승만 독재 정권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훗날 4·19 혁명의 불씨가 되었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根幹)을 세우는 초석(礎石)이 되었습니다. 평범한 시민들이 모여 불의(不義)에 맞서고 공동체의 안녕을 고민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제가 지향하는 마을 공동체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영화감독으로서 이 모든 장면을 프레임 안에 담아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곤 합니다. 스탈린의 죽음과 처칠의 연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뜨거웠던 외침까지. 역사라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배역을 맡은 배우들입니다. 저 역시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 활동가'라는 배역에 충실하며, 어제의 역사를 발판 삼아 내일의 희망을 촬영(撮影)해 나가려 합니다.

 

역사는 흐르는 강물과 같아서 멈추지 않지만, 그 물길을 바꾸는 것은 결국 깨어 있는 사람들의 의지입니다. 3월 5일이라는 하루를 정리하며, 제가 가진 펜과 카메라는 과연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깊이 성찰(省察)해 봅니다. 권력의 부침(浮沈)보다는 민초들의 삶을, 거창한 담론(談論)보다는 마을 구석구석의 따뜻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저의 본분(本分)임을 다짐하며 일기를 맺습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