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켜를 쌓는 마을 활동가의 명상(冥想)

칼럼/수필|2026. 3. 6. 22:18

시간의 켜를 쌓는 마을 활동가의 명상(冥想)

겨울의 완고(頑固)함이 풀리고 대지(大地)가 기지개를 켜는 3월의 첫 주말입니다. 오늘은 37,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하루겠지만, 역사의 책장을 넘겨보면 이 날 역시 인류가 남긴 굵직한 발자취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 활동가이자 진다리방송 대표로서, 저는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 덧칠해진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召喚)하여 기록의 의미를 되새겨 봅니다.

 

세계사의 시계를 193637일로 돌려봅니다. 이날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고 라인란트의 재무장(再武裝)을 전격적으로 단행(斷行)했습니다. 평화를 약속했던 조약이 휴지조각이 되고, 탐욕(貪慾)과 오만(傲慢)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는 훗날 인류 최대의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되었지요.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고민하는 활동가의 관점에서 볼 때, 지도자의 잘못된 판단과 독단(獨斷)이 공동체에 얼마나 참혹(慘酷)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엄중(嚴重)한 경고로 다가옵니다.

 

시선을 돌려 196537, 미국 앨라배마주 셀마의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바라봅니다. 흑인 투표권을 요구하며 행진하던 시민들이 경찰의 무자비(無慈悲)한 폭력에 쓰러졌던 '피의 일요일'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비극은 멈춤이 아니라 거대한 물결의 시작이었습니다. 시민들의 굴하지 않는 용기는 결국 투표권법 제정이라는 민주주의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시민기자로서 저는 이 대목에서 전율(戰慄)을 느낍니다.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평범한 이들의 연대(連帶), 그것이야말로 역사를 전진시키는 진정한 동력(動力)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현대사 속 37일은 어떠했을까요. 1951년 이날은 한국전쟁의 참화(慘禍)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정부는 국민 방위군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며 내부의 부조리(不條理)와 싸우고 있었습니다.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것은 내부의 부패(腐敗)와 무관심(無關心)이라는 진리를 역사는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마을 활동가로서 제가 현장에서 늘 경계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체 내부의 신뢰와 투명성(透明性)임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영화감독의 프레임으로 오늘을 재구성(再構成)해 봅니다. 라인란트로 진격하는 군화 소리와 셀마의 다리 위에서 울려 퍼지던 노래, 그리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민주주의를 고민하던 선조들의 고뇌(苦惱). 이 모든 장면은 하나의 다큐멘터리가 되어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마을에서 어떤 역사를 쓰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진다리방송을 통해 이웃들의 소소한 삶을 담아내고, 시민기자로서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는 저의 일상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느낍니다.

 

역사는 특별한 영웅들만의 전유물(專有物)이 아닙니다. 오늘을 성실히 살아가는 마을 주민들의 땀방울이 모여 내일의 전설이 됩니다. 37일이라는 시간의 층위(層位) 위에,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 활동가'라는 이름으로 정의와 평화의 문장을 새겨 넣습니다.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직하고 따뜻한 기록들이 쌓여 우리 마을의 단단한 지층(地層)이 되기를 소망(所望)하며 붓을 내려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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