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칼럼/수필|2026. 2. 4. 20:40

산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종종 그들의 표정부터 들여다본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그들은 대체로 느긋하고, 말수가 적으며, 웃음이 느리다. 도시의 사람들보다 더 많이 가진 것은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얼굴에는 여백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행복해 보인다.

 

그러나 그 말은 관찰이 아니라 바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산에 사는 그들의 삶을 통해, 어쩌면 자신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마음을 비추어 보는 것은 아닐까. 자연인이라 불리는 사람들 중에는 병으로, 실패로, 관계의 파손으로 산에 들어간 이들이 많다. 이 사실은 산이 선택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착지였음을 말해준다. 그들은 처음부터 자연을 꿈꾼 사람들이기보다, 사회의 속도를 끝까지 따라가다 더는 몸과 마음이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렇다면 산에 사는 삶은 사회를 거부한 삶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사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에서 한 발 물러난 것에 가깝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나,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데 필요한 만큼만 선택한 삶이다.

 

산에서는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누가 더 잘했는지 비교할 대상도 적다. 평가가 줄어든 자리에 반복과 노동, 그리고 침묵이 들어선다. 이 단순함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신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도달한다. 그래서 산에 사는 사람들의 평온은 행복이라기보다 안도에 가까운 감정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산에 사는 삶이 곧 더 나은 삶이라는 결론은, 또 다른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에는 병원이 멀고, 겨울은 길며, 도움을 청할 이웃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다. 자연은 위로를 주지만 동시에 무심하다. 산속의 삶 역시 선택의 결과이며, 그 선택에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

 

그래서 산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저들은 왜 행복한가가 아니라, “나는 왜 저들의 모습에서 안식을 느끼는가이다. 그 질문 끝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은 산이 아니라, 그들이 선택한 삶의 밀도라는 사실을. 관계의 수를 줄이고, 욕망의 반경을 좁히고, 하루의 크기를 다시 정한 삶 말이다.

 

결국 산은 답이 아니다. 다만 질문을 정직하게 만드는 장소일 뿐이다.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관계를 감당하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역할을 연기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용기는 있는지. 산에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일은, 그래서 풍경 감상이 아니라 자기 성찰에 가깝다.

 

그들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산으로 오라. 대신 조용히 묻고 있는 듯하다. “당신은 지금, 어디까지가 필요하고 어디부터가 과한가.” 그 질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출 수 있다면, 굳이 산에 오르지 않아도 삶은 조금은 가벼워질지도 모른다.

신준영: 글쓰기를 좋아하는 마을 활동가

댓글()